5화. 다른 손님, 흔들리는 마음
2026. 7. 22. · 👁 6
#1 그날은 평소와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오후 두 시 반쯤, 처음 보는 여자 손님이 카페에 들어왔다. 세련된 옷차림에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카페 안을 한 번 훑어보더니 곧장 창가 자리 근처에 앉았다. 서연은 별생각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준비했다. "저기 앉은 분, 처음 보는 얼굴인데." 민아가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그러게. 근데 뭐, 새로운 손님이 온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서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이 평소와 크게 다른 하루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 시 정각, 지훈이 여느 때처럼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자리로 향하던 그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어, 수진 씨?" 지훈이 놀란 얼굴로 그 여자 손님을 알아보았다. "지훈 씨! 여기서 마주치네요. 얘기 들었던 그 카페가 여긴가 봐요." 여자가 반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훈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서연은 카운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유 모를 불편함이 가슴 한쪽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쪽으로 앉아도 될까요? 오랜만인데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 좀 해요." "아, 네. 그러시죠." 지훈이 평소 앉던 창가 자리가 아닌, 수진이라는 여자와 함께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서연은 순간 심장이 살짝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늘 같은 자리에 앉던 사람이 오늘은 다른 곳에 앉는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흔들 줄은 몰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인을 만나면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런데도 서연은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늘 앉던 창가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걸 보니, 마치 뭔가 소중한 게 어긋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2 "주문 도와드릴까요?" 서연이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메리카노 주세요. 지훈 씨는 늘 드시던 걸로 하실 거죠?" 수진이 지훈을 향해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 네." 지훈이 짧게 대답하며 서연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서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카운터로 돌아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서연의 귀에는 자꾸만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같이 참여했던 스터디 모임 이야기, 서로 아는 지인들 이야기.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했다. 서연은 애써 그 대화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라떼 아트를 만들다가 우유 거품을 망쳐버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 언니, 오늘 왜 이래?" 민아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냥… 손이 미끄러졌어." 서연은 서둘러 새 컵을 꺼내 다시 우유를 데웠다. 손이 떨리는 이유를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두 번째로 우유 거품을 내리면서도 서연의 시선은 자꾸만 그 테이블로 향했다. 수진이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 그에 맞장구치듯 웃는 지훈의 얼굴. 평소 자신과 나누던 짧고 조용한 대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저렇게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 서연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완성된 커피를 가져다주며, 서연은 최대한 담담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진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지훈은 서연과 눈이 마주치자 짧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서연은 그 짧은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카운터로 돌아오면서 서연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손님과 지인의 만남일 뿐이다, 별일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귀가 쏠렸다. 수진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지훈이 짓는 표정 하나하나가, 이상하게도 눈에 걸렸다. #3 카운터로 돌아온 서연은 애써 다른 손님들에게 집중하려 했지만, 시선은 자꾸만 그 테이블로 향했다. 수진이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지훈이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자신에게 보여주던 미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 사실이 서연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뭘 기대했던 거지.' 서연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훈은 그저 카페에 오는 손님일 뿐이었다. 손님이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뭐가 이상한 일인가. 그런데도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언니,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민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거짓말이었다. 피곤한 게 아니라,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당황하고 있었다. 질투라는 단어를 스스로의 감정에 붙이기가, 서연은 아직 낯설고 어색했다. 한 시간쯤 지나 수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제 가봐야 해서요.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지훈 씨." "네, 조심히 가세요." 수진이 카페를 나서고, 지훈은 다시 혼자 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늘 앉던 창가 자리로 옮기지 않고, 잠시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서연과 눈이 마주치자, 지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까는 갑자기 아는 사람을 만나서요. 대학 때 같은 스터디였던 사이예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이었다. 그런데 지훈이 그 말을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 서연의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혀 주었다. "아, 그러셨구나." "오늘은 자리를 옮겨서 죄송했어요. 내일은 다시 늘 앉던 자리로 갈게요." 지훈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서연은 그 말에 괜히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런 감정을 이렇게까지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자리야 어디 앉으셔도 상관없죠. 손님 자유인데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지훈이 돌아간 뒤 서연은 카운터에 기대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마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관심이라고만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언니, 아까 표정 완전 굳어 있던데. 괜찮아?" 퇴근 준비를 하던 민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괜찮아. 그냥… 오늘 좀 이상한 하루였네." "뭐가 이상해. 그냥 언니 좋아하는 사람한테 다른 여자가 나타나서 신경 쓰였던 거지." 민아의 직설적인 말에 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맞는 것 같아." 서연이 작게 인정하자, 민아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 드디어 인정하는 거야?" "응. 이제 더는 아니라고 못 하겠어." 말로 내뱉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숨겨왔던 감정을 드디어 인정한 순간이었다. 마감을 준비하며 서연은 창가 자리를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다시 저 자리에 앉을 지훈의 모습을 떠올리며, 서연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는 것을. 가게 문을 닫고 나서는 길, 서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하루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질투도 느끼고, 마음 졸이는 것.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그 서툰 떨림이 낯설면서도 조금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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