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piad
🚀 창백한 푸른 점 · 나우간

8화. 폐쇄 구역

2026. 7. 15. · 👁 7

글자 크기

자정이 지나자, 아르테미시아 기지는 낮의 분주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거동 복도의 조명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발소리조차 크게 울릴 만큼 사방이 고요했다. 지은은 예상대로 카드키를 구해왔다. 정거장에 남아있던 옛 동료가, 이유는 묻지 않은 채 임시 접근 권한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이걸로 격벽 문은 통과할 수 있어요." 지은이 카드키를 손에 쥐고 말했다. "안에서 뭘 마주칠지는... 저도 몰라요." 두 사람은 비상등만 켜진 복도를 따라 연구동으로 향했다. 철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는 걸 느끼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구 데이터 보관실 앞, 지은이 카드키를 리더기에 갖다 댔다. 짧은 삐 소리와 함께, 초록 불빛이 들어왔다. 육중한 격벽 문이 낮은 기계음을 내며 옆으로 밀려 열렸다. 안은 예상보다 훨씬 좁았다. 낡은 서버 랙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대부분의 장비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듯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 사이, 유독 하나의 콘솔만이 희미하게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이거예요." 지은이 떨리는 손으로 콘솔 앞에 앉았다. "정거장에서 막혀있던 자료, 원본이 여기 있을 거예요." 그녀는 준비해온 우주국 옛 접근 코드를 입력했다. 화면에 오류 메시지가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화면이 열렸다. 정지훈 — 화성 유인 탐사 임무 '아레스-3' — 최종 교신 기록 지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관제, 여기는 아레스-3. 추진 계통에 이상 신호 감지... 반복한다, 추진 계통 이상..." 정지훈의 목소리였다. 지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관제, 응답 바람. 이건... 이건 원래 계획에 없던 궤도 편차야. 시스템이 왜 자동으로... 대체 누가—" 교신은 그 지점에서 갑자기 끊겼다. 노이즈만 남긴 채였다. "자동으로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죠?" 철수가 물었다. 지은은 화면 아래, 함께 저장된 문서 파일을 열었다. 임무 사후 분석 보고서였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문단이 검게 칠해져 지워져 있었다. 남은 문장들만이 드문드문 읽혔다. "...궤도 수정 알고리즘, 지상 관제팀의 원격 개입 없이 자동 실행됨... 원인 미상... 실험적 자율 항법 시스템 '오리온-X' 탑재 사실 비공개 처리..." "자율 항법 시스템?" 지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 배에... 검증되지 않은 실험 장비가 몰래 실려 있었다는 거예요?" 철수는 그제야 상황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럼 사고는... 기계 결함이 아니라—" "은폐된 실험 실패." 지은이 문장을 끝맺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자, 어둠 속에 한도영 기장이 서 있었다. "...결국 찾아내셨군요." 기장의 목소리는 낮고, 기묘하게 차분했다. 지은이 벌떡 일어섰다. "당신도 알고 있었어요? 오리온-X에 대해서?" 기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침묵과, 그가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이미 모든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기장님." 철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지금, 여기로 오신 거예요?" 한도영은 천천히 서버실 안으로 걸어 들어와, 콘솔 화면에 떠 있는 정지훈의 마지막 교신 기록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11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아득해졌다. "왜냐하면,"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도 이제는, 그 문 앞에서 그만 서성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 댓글 0

로그인하고 감상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