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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백한 푸른 점 · 나우간

5화. 게이트웨이 정거장

2026. 7. 15. ·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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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를 두 바퀴 반 돌고 나서야, 아리랑-7호는 루나 게이트웨이 정거장과 도킹했다. 도킹 해치가 열리는 순간, 철수는 오래된 금속과 소독약이 뒤섞인 냄새를 맡았다. 지구의 그 어떤 공간과도 다른, 낯설고도 묘하게 익숙한 냄새였다. "여기서부터는 지구 저궤도가 아니라 정지궤도 바깥, 진짜 심우주 초입입니다." 한도영 기장이 승객들을 인솔하며 설명했다. "달 기지로 가는 착륙선은 사흘 뒤 출발합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적응 기간을 가지시게 됩니다." 정거장 내부는 좁고 복잡한 통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벽마다 손잡이와 고정 밴드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사람들은 걷는 대신 손잡이를 잡고 몸을 밀어 이동했다. 철수는 첫날 세 번이나 통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것도 사흘 지나면 적응돼요." 지은이 웃으며 말했다. "정거장 근무자들은 눈 감고도 다니던데요." 정거장 생활은 상상보다 훨씬 규칙적이었다. 하루 세 끼, 진공 포장된 식사를 데워 먹었다. 국물 요리는 없었다—무중력에서 액체는 관리하기 까다로운 골칫거리였으니까. 대신 걸쭉한 스튜와 압축된 고형식이 주를 이뤘다. 수면은 벽에 고정된 침낭 안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엔 몸이 붕 뜨는 느낌 때문에 잠들기 어려웠지만, 지은의 조언대로 침낭을 몸에 바짝 밀착시키자 한결 나아졌다. 지구와의 통신도 예전과는 달랐다. 문자와 음성 메시지는 보낼 수 있었지만, 실시간 통화는 불가능했다. 신호가 오가는 데만 1.5초 이상 걸렸고, 정거장의 통신 대역폭은 제한적이어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철수는 부모님께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잘 도착했어요. 여기, 정말 아름다워요." 답장이 오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둘째 날, 지은은 정거장 기록보관소를 찾아갔다. 아르테미시아 기지의 통신 로그 일부가 이곳에도 백업되어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터였다. 철수도 동행했다. 기록보관소는 정거장 아래층, 좁은 서버실 옆에 딸린 작은 열람 부스였다. 담당 직원은 지은이 요청한 검색어 — '2029년 화성 유인 임무, 정지훈' — 를 입력하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이 기록은 접근 제한 대상입니다." "제한이요? 왜요?" 지은이 물었다. "사유는 저도 모릅니다. 시스템상 '기밀' 태그가 붙어 있어요. 특별 인가가 있어야 열람 가능합니다." 지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11년 전 사고 기록이 왜 아직도 기밀이죠?" 직원은 어깨를 으쓱할 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부스를 나서며, 지은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상해요. 민간 우주여행사 데이터베이스에 우주국 기밀 자료가 왜 남아있는지도 이상하고, 그게 하필 지금도 막혀 있다는 것도 이상해요." "누군가 일부러 막아놓은 거란 얘기예요?" "그럴 수도 있죠." 지은이 통로 저편을 흘끗 돌아보았다. "아니면, 누군가 아직도 이 사건에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거나." 그날 저녁, 정거장 공용 라운지에서 철수는 우연히 한도영 기장과 마주쳤다. 기장은 창밖 지구를 바라보며 홀로 서 있었다. 철수가 인사를 건네자, 기장이 돌아보며 옅게 웃었다. "박지은 씨와 꽤 가까워지셨더군요." "네... 좋은 분이더라고요." 철수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기장님, 혹시 정지훈이라는 분 아세요? 2029년 화성 임무요." 기장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아주 짧았지만, 철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래된 이름이군요." 기장이 낮게 대답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기장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다시 지구로 돌렸다. 하지만 철수는 그 침묵 속에 담긴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창밖으로 지구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정거장의 조명이 하나둘 취침 모드로 어두워지는 동안, 철수는 이 여행이 처음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궤도를 그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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