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창백한 푸른 점으로 돌아가며 (完)
2026. 7. 16. · 👁 5
대기권 진입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었다. 연료가 아슬아슬하게 남은 상태에서, 한도영은 마지막 감속 기동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길잡이호는 예정된 착륙장이 아닌, 우주국 본부 인근의 비상 활주로에 강행 착륙했다. 해치가 열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활주로에 나와 있었다. 의료진, 취재진, 그리고 정복 차림의 우주국 관계자들. 그 한가운데, 최윤아 실장이 서 있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정지훈을 본 순간, 의료진이 즉시 달려들어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지은은 그 옆을 따라가며, 아버지의 손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다. "살릴 수 있습니다." 의료진 책임자가 신속하게 말했다. "즉시 수술실로 옮기겠습니다." 지은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철수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 최윤아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방어적이지 않았다. "박지은 씨."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오리온-X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11년 전, 당신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에요." 지은은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차올랐지만,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주세요.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에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관련 기록을 모두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게 될 거예요." 한도영이 그 옆에서 조용히 덧붙였다. "저도 함께 조사받겠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이번엔 끝까지 밝히겠습니다." 며칠 후, 오리온-X 프로젝트의 전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검증되지 않은 자율 항법 시스템의 비밀 탑재, 그로 인한 사고, 그리고 11년간의 은폐. 사회는 크게 술렁였지만, 동시에 정지훈의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 함께 전해지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지훈은 오랜 재활 치료 끝에 서서히 회복해갔다. 지은은 매일 병원을 찾아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어느 날, 마침내 온전히 의식을 되찾은 정지훈이 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많이... 컸구나." 지은은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11년의 세월이, 그 짧은 포옹 속에서 조금씩 메워지고 있었다. 몇 달 뒤, 철수는 지구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그는 우주국 산하 민간 협력 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우주여행 안전 기준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예정된 왕복 항해권은 결국 쓰이지 못했지만, 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지은과 철수는 여전히 자주 만났다. 어느 저녁, 두 사람은 나로우주센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가 생각나요." 철수가 말했다. "그땐 그냥, 특별한 하루를 찾고 싶어서 왔었는데." "지금은요?" 지은이 물었다. "지금은," 철수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특별한 사람을 찾은 것 같아요." 지은은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그의 어깨에 기댔다. 저 멀리, 발사를 준비하는 또 다른 우주선이 조명을 받으며 서 있었다.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지은이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고요. 다 철수 씨 덕분이에요." "저는 오히려 지은 씨 덕분에, 진짜 제 인생을 찾은 것 같은데요." 철수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2040년에 우주로 떠난 건,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저물어가는 노을과 발사를 기다리는 로켓을 함께 바라보았다. 지구에서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던 일상 대신,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철수에게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지구에서 새로운 궤도를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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