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밀실의 서약, 그리고 위험한 동거
2026. 7. 21. · 👁 4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대표님. 완벽하게 처리해 드리죠.” 서진의 입꼬리가 아슬아슬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십 년 차 수석 비서로서의 자존심이자, 날 선 도발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은근한 선전포고였다. 회의실 안을 메운 임원들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좋습니다. 오늘부로 비서실 프로세스 개편안은 즉시 시행합니다. 이상입니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덮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서진을 한 번 훑은 그는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고 임원들이 하나둘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떠났다. 다은이 벌떡 일어나 서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와…… 수석 비서님, 방금 진짜 멋있었어요. 근데 이거 진짜 괜찮은 거예요? 모든 부서 결재를 우리가 다 크로스 체크하라고요? 야근은 둘째치고, 대표님이 우리를 아주 그냥 뼈도 못 추리게 갈아 마시겠다는 소리 아니에요?” 다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서진의 심장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날 가두겠다는 거지? 내 숨통을 쥐고 흔들면서 과거의 이유를 캐내겠다고?’ 오기가 생겼다. 칠 년 전 자신을 미련하게 도망치게 만들었던 그 죄책감과 두려움은, 이 비열하고도 치밀한 복수 앞에서 점차 반발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업무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개편안이 시행되자마자 각 본부에서 올라오는 결재 서류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략기획실, 재무팀, 인사팀의 핵심 데이터가 모두 비서실을 거쳐야 했고, 그 최종 관문에는 언제나 서진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십 년 차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단 하나의 오탈자도 허용하지 않고, 허술하게 작성된 기획서들은 매몰차게 반려하며 철저한 검증을 거듭했다. 오후 다섯 시. 서진이 산더미 같은 서류를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수석 비서, 당장 대표실로 올라와.] 단호하고 짧은 명령. 서진은 수정된 최종 기획서 파일을 태블릿에 담고 단추를 여미며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시우는 창가에 기대어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켓을 벗고 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친 모습은 묘하게 치명적인 섹시함을 풍겼다. “기획서 검토 끝냈습니다. 재무팀의 세 번째 안은 리스크가 너무 커서 반려했고, 전략기획실의 신사업 안은 보완 지시 내렸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서진이 태블릿을 내밀었지만, 시우는 그것을 받아 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서진에게 걸어와, 그녀가 들고 있는 태블릿을 툭 쳐서 책상 위에 떨어뜨렸다. 탁, 하는 건조한 소리가 울렸다. “업무 얘기는 그만합시다, 한서진 씨.” 시우가 서진의 허리를 감싸듯 한 걸음 다가왔다. 서진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시우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서진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는 그녀를 거대한 유리창 쪽으로 부드럽게 밀어붙였다.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냐고? 질문을 바꿀 차례야, 우리.” 시우의 눈앞이 바짝 다가왔다. 그의 은은한 향수 냄새와 뜨거운 체온이 서진의 호흡을 완전히 흐트러뜨렸다. “왜 그랬어, 칠 년 전의 그날.” 시우의 목소리에서 가시가 툭 떨어져 나갔다. 그 속에는 분노보다 훨씬 짙은, 오랜 시간 아물지 않은 상처의 파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가난해서? 내 성공을 확신할 수 없어서? 아니면…… 그냥 내가 버거워서?” 서진은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려 이를 악물었다. “그때의 저는…… 제 코가 석 자였습니다. 누구를 돌볼 겨를도 없었고, 누군가의 미래를 담보로 잡힐 만큼 이기적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겁니다.” “거짓말.” 시우가 즉각적으로 반박했다. 그의 손이 서진의 손목을 조금 더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아프지 않을 만큼의 압력이었지만, 그 진심 어린 온도가 서진의 방어막을 찢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넌 그날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 무언가 숨기는 눈빛이었지.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칠 년 동안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 없어. 그리고 네가 그동안 어떻게 이 자리까지 기어올라왔는지도 다 조사했어.” 서진의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시우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악착같이 버텨서 이 자리에 올라왔는지, 그 상처의 밑바닥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도망칠 생각 하지 마.” 시우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서진의 입술 턱밑까지 다가왔다. “이제부터 넌 내 비서실뿐만 아니라, 내 사생활의 모든 구역에도 완벽하게 묶일 거야.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어, 한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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