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통제 불능의 텐션
2026. 7. 22. · 👁 3
닫힌 엘리베이터의 스틸 벽면으로 서진의 뒤통수가 부드럽게 밀려붙었다. 시우의 단단한 몸이 벽을 짚으며 서진을 온전히 자신의 그늘 아래 가두어 버렸다. “질투? 맞아, 질투야. 나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어, 한서진.” 시우의 눈빛은 거칠게 사로잡힌 맹수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진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을 채운 그의 거친 숨소리와 차가운 눈빛에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이를 악물고 시우의 가슴을 세게 밀어냈다. “이거 놓으세요! 사적인 감정으로 사원들을 압박하고 기획안 재검토를 명령하는 게 대표로서 할 짓입니까? 이태성 팀장은 공적으로 업무 협조를 하러 온 겁니다!” “업무 협조?” 시우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 끝에는 서늘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이 업무 협조를 바라는 눈빛이었어? 너한테 주말에 저녁 먹자고 작업 거는 게 공적인 협조냐고!” “그건……!” “내가 분명히 말했지.” 시우가 고개를 숙여 서진의 귀밑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게 읊조렸다.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닿자 서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내 눈앞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말라고. 다른 남자 보고 웃어주지도 마. 넌 십 년 차 수석 비서이기 전에, 칠 년 전 나한테서 도망친 한서진이야.” ‘띵-’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대표실이 있는 로열 층에 도달해 부드럽게 열렸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 직원들과 다은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대표가 수석 비서를 벽에 밀어붙이다시피 한 채 굳어 있는 기괴하고 위험한 장면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서진은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십 년 차 비서다운 기개를 발휘해 시우의 손을 온힘을 다해 뿌리치고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대표님, 기획조정실 수정안 검토 건은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시는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유감을 표합니다.” 서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키보드 위에 올라간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우는 뒤늦게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서진의 차가운 뒷모습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집무실 문을 강하게 닫고 들어갔다. 그날 이후, 비서실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서진은 철저하게 완벽한 '비서'로서만 시우를 대했다. 사적인 대화는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았고, 시우가 어떤 도발이나 시선을 던져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보고서만 내밀었다. 하지만 시우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시우는 전사 임원 및 수석 비서진이 참석하는 긴급 밤샘 전략 회의를 소집했다. 말이 밤샘 회의지, 사실상 서진을 집에 보내지 않고 자신의 눈앞에 붙잡아 두려는 시우만의 치밀하고 집요한 수작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회의실 안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하나둘 임원들이 지쳐갈 때쯤, 시우가 차갑게 정적을 깨뜨렸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임원분들은 퇴근하십시오.” 임원들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허겁지겁 자리를 정리하고 나갔다. 다은 역시 서진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다. “수석 비서님, 저…… 먼저 퇴근해도 될까요?” “응, 다은 씨 고생했어. 먼저 들어가.” 서진이 다정하게 말하자, 대표실 문을 열고 나오던 시우가 차가운 목소리를 얹었다. “한 수석은 남아서 오늘 회의록 요약본 정리하고 대표실로 가져와.” 다은은 혀를 차며 빠르게 퇴근했고, 넓디넓은 비서실과 대표실 층에는 오직 시우와 서진,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새벽 한 시. 서진은 완벽하게 정리된 회의록을 태블릿에 담아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집무실의 조명은 은은한 주황색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다. 시우는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통유리창 너머의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위스키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회의록 정리 완료했습니다. 결재함에 올려두겠습니다.” 서진이 공적으로 선을 그으며 돌아서려 하자, 시우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툭 하고 울렸다. “한서진.” “네, 대표님.” “언제까지 그렇게 로봇처럼 굴 생각이지?” 시우가 천천히 돌아서서 서진에게 다가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약간의 음주로 인한 나른함과 함께,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짙은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업무 시간 끝났어. 여긴 단둘뿐이고.” “공적인 업무로 남겨두신 건 대표님이십니다. 할 일이 끝났으니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서진이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덮쳐오며 시우의 긴 팔이 서진의 허리를 거세게 감싸 안았다. “앗……!” 서진의 몸이 뒤로 끌려가 시우의 단단한 가슴에 밀착되었다. 시우는 서진의 목덜미에 깊게 얼굴을 파묻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에서 진한 위스키 향과 알싸한 향수 냄새, 그리고 뜨거운 체온이 번져왔다. “놓으세요, 강시우……!” “못 놓아.” 시우의 목소리가 아이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단단하고 오만하던 사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애절한 떨림이었다. “칠 년 동안 매일 밤 너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롭히려고 이를 악물었는데…… 막상 네가 이렇게 차갑게 굴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시우가 서진의 몸을 돌려세워, 문에 밀쳐두고 그녀의 양 뺨을 뜨거운 손으로 감쌌다.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서진아. 차라리 나한테 욕을 해. 그때 힘들었다고, 나한테 짐이 되기 싫어서 거짓말했다고 솔직하게 말해란 말이야!” 서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시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서진이 진심으로 자신을 미워해서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을. 단지 서진의 입에서 그 진실과 진심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그녀를 매몰차게 몰아붙였던 것이었다. “당신…… 알고 있었어?” 서진의 눈가에서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져 시우의 손등을 적셨다.
💬 댓글 0
로그인하고 감상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