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동면에서 깨어나며
2026. 7. 16. · 👁 6
이레째 되던 날, 지은의 캡슐이 서서히 열렸다. 뿌옇게 서린 유리 너머로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 철수는 조종석 옆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지은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의 모습에, 철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길잡이호예요. 일주일 동안 잘 잤어요." "일주일이나요?" 지은이 몸을 일으키려다 휘청였다. 철수가 재빨리 팔을 잡아 부축했다. "천천히요. 한도영 기장님이 그러셨잖아요, 며칠은 방향감각이랑 근력이 정상이 아닐 거라고." 지은은 잠시 철수의 팔에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고마워요. 근데... 철수 씨는 괜찮아요? 계속 혼자 깨어있었던 거잖아요." "저야 뭐, 원래도 잠 별로 안 자는 편이라." 철수가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지은은 그의 눈 밑에 짙게 그늘진 피로를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 그녀가 낮게 웃으며 그의 손등을 살짝 두드렸다. "이번엔 제가 깨어있을게요. 철수 씨도 좀 쉬어요." 그 짧은 손길에, 철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좁은 선실 안,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처음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다는 걸, 그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한도영 기장은 그사이 항법 콘솔 앞에서 소행성대 진입 경로를 재계산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항로는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어려운 구간입니다." 그가 두 사람을 불러 모아 설명했다. "소행성대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바위투성이는 아니지만, 미세 잔해와 얼음 파편이 예측 불가능하게 떠다녀요. 자동 회피 시스템이 있긴 해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통신은요?" 지은이 물었다. "지구와의 지연 시간이 이제 20분을 넘습니다. 실시간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끼리 판단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계기판에서 낮은 경보음이 울렸다. 전방 미세 잔해 밀집 구역 진입 — 자동 회피 기동 실행 선체가 살짝 흔들리며 궤도를 튼 순간, 창밖으로 주먹만 한 얼음 파편들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철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괜찮아요." 한도영이 담담하게 계기판을 조작하며 말했다. "이 정도는 예상 범위 안입니다." 몇 분간 이어진 긴장 끝에, 경보음이 잦아들었다. 길잡이호는 무사히 밀집 구역을 통과했다. 그날 밤—이라기보다는, 선내 시각으로 지정된 취침 시간. 철수는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관측창 앞에 앉아 있었다. 지은이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저기." 그녀가 창밖 어둠을 가리켰다. "저 어딘가에, 아버지가 있을지도 몰라요." 철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옆에 있어 주었다. 굳이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 것이, 지금은 더 나은 위로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철수 씨." 지은이 나지막이 불렀다.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도 고마워요." 철수가 답했다. "지은 씨 덕분에, 제 인생에서 가장 진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나란히 앉아, 점점 가까워지는 소행성대의 희미한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철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구를 떠나기 전엔, 제 인생에 이렇게 뚜렷한 목적이 생길 줄 몰랐어요. 그냥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살았거든요." "지금은요?" 지은이 물었다. "지금은 매 순간이 선명해요. 무서운데,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는 기분이에요." 철수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은 씨를 만난 게... 이 여행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지은의 뺨이 옅게 붉어졌다.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대신 철수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저도요."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관측창 너머, 소행성대의 잔해들이 별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풍경은 위험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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