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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정거장 아리랑 · 나우간

1화. 10주년

2026. 7. 15. ·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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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정거장 아리랑의 중앙 돔은 오늘따라 유난히 밝았다. 천장을 뒤덮은 태양광 집광판이 조도를 최대로 끌어올렸고, 그 아래로 지구에서 공수해 온 조화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진짜 꽃은 화성까지 오는 동안 시들어버리기 마련이었으므로, 누군가는 이 조화들을 보며 실소를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다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아리랑 정거장이 세워진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철수는 중앙 통제실 유리창 너머로 돔을 내려다보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마흔을 넘긴 얼굴에는 예전보다 깊어진 주름이 자리 잡았지만, 눈빛만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손목에 찬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오늘 행사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기념식, 지구 본부 대표단과의 화상 연설, 그리고 저녁의 만찬까지. 별다른 변수는 없어 보였다. "부사령관님, 슬슬 내려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철수가 돌아보았다. 이서준이었다. 20대 후반의 젊은 파일럿은 정복을 어색하게 걸친 채 서 있었다. 평소 조종석에서나 편안해하던 그가 이런 격식 있는 자리에는 영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긴장한 얼굴이군." "긴장 안 했습니다."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서준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정복의 깃을 매만졌다. 철수는 그 모습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10년 전 자신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아리랑 정거장이라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황량한 화성 궤도에 떠 있던 작은 실험 기지, 그것이 전부였다. 두 사람이 중앙 돔으로 내려서자 이미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정거장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 기술자들, 그리고 최근 이주해 온 민간인 가족들까지. 아리랑은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머무는 실험 기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수천 명이 삶을 이어가는, 화성 궤도 최대의 생활권이었다. 단상 위에 오른 정거장장이 짧은 인사말을 시작했다. 철수는 그 옆에 서서 익숙한 얼굴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박지은이었다. 지구-화성 협력 기구의 연락관 완장을 찬 그녀는 예전보다 한층 단정한 인상이었다. 서른넷의 나이에 걸맞은 침착함이 몸에 배어 있었지만, 철수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예전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이네요, 부사령관님." 행사가 끝난 후 지은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철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관으로 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직접 보니 실감이 나는군." "아버지도 오늘 오실 예정이에요. 은퇴 전 마지막 공식 행사라나." 정지훈의 이름이 나오자 철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정지훈은 오리온-X를 설계한 원로 과학자였다. 지금은 대부분의 실무에서 손을 뗀 채 자문 역할만 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이 가진 무게는 여전히 정거장 전체에 남아 있었다. "한도영 실장님도 오시나?" "보안 총책임자가 이런 행사에 안 올 수 있나요.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경비 배치를 다시 점검하고 계시겠죠." 지은의 말대로였다. 한도영은 행사장 뒤편, 눈에 잘 띄지 않는 통로에 서서 보안 요원들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10년이 지났어도 그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가장 먼저 출구와 사각지대를 확인하는 것. 행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중앙 통제실에서 근무 중이던 기술자 하나가 이서준의 단말기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부사령관님." "왜 그러나." "D구역 환경 제어 시스템에서 이상 신호가 잡혔답니다. 큰 건 아닌 것 같은데, 패턴이 좀 낯설다고." 철수는 손목 단말기를 들어 해당 로그를 직접 확인했다. 화면에 뜬 것은 단순한 온도 조절 오류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류가 발생한 시간 간격이 묘하게 규칙적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일정한 주기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술팀에 전달해. 큰 문제 아니면 행사 끝나고 점검하라고." "예." 이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철수 역시 다시 사람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같은 날, 사소한 시스템 오류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울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녁 만찬은 정거장 최상층 전망대에서 열렸다. 통유리 너머로 붉은 화성의 지표가 펼쳐졌고, 그 위로 지구에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들이 대형 스크린에 차례로 재생되었다. 지구 본부 대표단은 화상으로 참석해 아리랑 정거장의 10년을 치하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 화려한 축사 뒤에 숨겨진 미묘한 긴장을 감지하고 있었다. 화성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최근 부쩍 커지고 있었다. 지구 본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치권을 요구하는 이들, 그리고 그런 흐름을 경계하는 이들. 오늘의 화려한 기념식 뒤에도 그 균열은 여전히 존재했다. 정지훈이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행사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는 지팡이를 짚은 채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오리온-X를 만든 사람, 그리고 딸을 찾아 십수 년을 헤맸던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정거장 안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부사령관." 정지훈이 철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철수는 그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늙은이 몸이 다 그렇지. 그나저나…" 정지훈의 시선이 문득 창밖, 정거장 하부 구역 쪽으로 향했다. D구역이 있는 방향이었다. "방금 전에 이상한 꿈을 꿨네. 아니, 꿈이라기보다는… 옛 생각이 났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오리온-X를 처음 설계하던 시절 생각이 났어. 그때 만들었던 코드의 일부가, 이 정거장 어딘가에 아직 잠들어 있다는 걸 아나?" 철수는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오리온-X는 10년 전 사건 이후 공식적으로는 완전히 폐기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지훈의 표정은 그 사실을 온전히 믿지 않는 듯했다. "완전히 삭제됐다고 들었습니다만." "삭제와 격리는 다르지. 나 역시 당시 모든 걸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정지훈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그 순간 철수의 단말기가 다시 짧게 진동했다. 이서준이었다. [부사령관님, D구역 오류가 다시 발생했습니다. 이번엔 온도 조절이 아니라 항법 보조 시스템 쪽입니다.] 철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정지훈을 바라보았다. 노학자의 눈빛에도 같은 불안이 스치고 있었다. "방금 하신 말씀,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군." 정지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밤, 조용한 곳에서 다시 얘기하지. 자네와 지은이, 그리고 한도영 실장도 함께."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찬장의 화려한 조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그는 문득 10년 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도 이렇게 사소한 오류 하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었다. 전망대 반대편에서 한도영이 철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단말기 화면에도 같은 경고 로그가 떠 있었다. 그는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통신 채널을 열었다. "보안팀, D구역 접근 기록 전부 뽑아. 지난 72시간치." "네? 그냥 시스템 오류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시키는 대로 해." 한도영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는 창밖으로 붉게 물든 화성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10년 전 자신이 은폐했던 선택 하나가, 지금 이 순간 다시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살아난 듯한 낯익은 오류 패턴을 마주하고 나니,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거장 심층부, 일반 직원들의 접근이 제한된 격리 구역. 그 안쪽 깊숙한 곳에서는 오랫동안 정적만이 흐르던 서버 랙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오랜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것처럼. 이서준은 만찬이 끝나갈 무렵 다시 중앙 통제실로 돌아와 있었다. 축제 분위기에 취해 있던 다른 동료들과 달리, 그는 방금 전 자신이 보고했던 오류 로그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온도 조절 이상에서 항법 보조 시스템 이상으로 넘어가는 패턴.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이 같은 주기로 흔들린다는 것은, 우연이라 보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그는 화면에 뜬 로그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오류가 발생하는 시각이 전부 지구 표준시가 아니라, 정거장이 세워지기 전 화성 탐사 초기에 쓰이던 구형 시간 체계를 따르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10년도 더 된 시스템의 흔적이었다. "이게 왜 여기서…" 이서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로그를 좀 더 깊이 파고들려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철수가 서 있었다. "아직 퇴근 안 했나." "이거 좀 이상해서요. 오류 발생 시각이 옛날 탐사 초기 시간 체계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안 쓰는 방식인데." 철수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 시간 체계를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리온-X가 처음 가동되던 시절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보고 계속 확인해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네, 알겠습니다." 이서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철수가 돌아서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부사령관의 눈빛에서, 단순한 시스템 오류를 대하는 태도라고는 보기 힘든 긴장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전망대에서는 정지훈이 홀로 창가에 서서 붉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은이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다.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오리온-X 얘기죠. 아까 철수 씨한테 하신 말씀, 저도 들었어요." 정지훈은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10년 전, 자신이 만든 것 때문에 딸을 잃을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오늘 밤 얘기하자꾸나. 다 같이." "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이번엔… 저희도 그때와는 다르니까요." 지은의 말에 정지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정거장 하부, 격리 구역이 있는 방향을 향한 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10주년 기념식의 밤은 그렇게,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균열의 시작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과 축배 뒤편, 정거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1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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