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piad
💕 비서실의 그 사람 · snow

제 9화. 빗속의 온도, 그리고 숨겨진 진실

2026. 7. 22. ·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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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도 아득했던 입술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여전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스위트룸 창밖으로는 여전히 쉴 새 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방 안을 채운 것은 천둥소리가 아니라 서로의 가쁜 숨소리뿐이었다. 서진은 발목까지 풀려버린 다리를 겨우 지탱한 채 시우의 셔츠 카라를 쥔 손을 천천히 풀었다. ‘내가 미쳤어…… 정신 나갔지, 한서진. 이건 공과 사가 완전히 무너진 거야.’ 후회와 혼란이 머릿속을 뒤흔들었지만, 동시에 가슴 한구석은 칠 년 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빙하가 녹아내리듯 묘한 해방감과 찌릿한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시우 역시 거친 숨을 고르며 서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방금 전까지의 서늘한 복수심 대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감정을 확인한 남자의 복잡한 여운이 서려 있었다. 시우가 손을 뻗어 서진의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이제 더 이상 핑계 대지 마. 네 마음도 나와 같다는 거, 다 느꼈으니까.” 서진은 당황하여 시우의 시선을 피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대표님, 아까 건…… 분위기에 휩쓸린 실수였습니다. 우리는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이고, 게다가……” “실수?” 시우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가 다시 서진에게 다가오려 하자, 서진은 황급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저 피곤합니다. 방이 하나밖에 없으니, 거실 소파는 제가 쓰겠습니다. 침실은 대표님께서 쓰시죠.” 서진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면 진짜로 이 남자에게 완전히 함락당할 것만 같아, 황급히 소파 쪽으로 걸어가 쿠션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시우가 한 발 먼저 다가와 서진의 손에 들린 쿠션을 툭 가로채 버렸다. “뭐 하는 겁니까?” “네가 거실 소파에서 자다 감기라도 걸리면, 내일 출장은 어쩌려고. 그리고 십 년 차 수석 비서를 찬 바닥에 재우는 악덕 상사로 소문나긴 싫거든.” “하지만 침실을 두고 어떻게…….” “침대 넓어. 같이 자든가, 아니면 내가 여기서 너랑 같이 소파에 끼어 앉아 있든가. 선택해.” 시우는 완강했다.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눈빛에 서진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결국 두 사람은 불편한 동거닌 동거를 시작하듯, 거대한 스위트룸의 침실로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는 킹사이즈보다 훨씬 컸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때문에 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조명을 끄고 각자 침대의 양쪽 끝에 누운 채 수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빗소리만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서진아.” 어둠 속에서 시우의 낮고 차분한 목소가 들려왔다. 칠 년 동안 단 한 번도 부르지 못했던 그 이름이 와닿는 순간, 서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 “끝까지 말 안 해줄 거야? 칠 년 전 그날, 네가 왜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고 나를 떠났는지. 네 집안이 갑자기 기운 거 말고, 진짜 이유가 뭐였어?” 어둠 속에서도 시우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서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 뒤이어 찾아온 사채업자들의 협박, 그리고 자신마저 잘못되면 유일한 혈육인 어린 동생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던 지옥 같은 상황들. 시우의 미래까지 그 시궁창에 쳐박을 수 없어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던 그날의 일들을. “……지나간 일입니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가 왜 없어.” 시우가 몸을 뒤척이며 서진 쪽으로 살짝 다가왔다.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체온이 훅 끼쳐왔다. “난 지난 칠 년 동안 네가 나를 쉽게 버렸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그 원망 하나로 버텨서 여기까지 왔고. 그런데 네가 그때 그 눈으로 나를 보지 않았다는 걸, 오늘 네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까 알겠더라고. 넌 뭔가를 숨기고 있었어. 내 말이 틀려?” 서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입술을 달싹이며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까 하는 충동이 치솟았다. ‘너한테 짐이 되기 싫었어. 사채업자가 대학까지 찾아오는 여자랑 엮이면 네 인생까지 망칠까 봐 무서워서 내가 먼저 도망친 거야.’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시우는 자신을 동정하거나 혹은 그 과거의 빚을 갚으려 들 것이다. 서진은 그런 식의 연민이나 짐을 그에게 지우고 싶지 않았다. “틀렸어요.” 서진은 최대한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를 짜내어 거짓을 뱉었다. “그냥…… 당신이 지겨웠던 거예요. 가난하고 미래도 안 보이던 그 시절의 연애가 넌절머리나게 지긋지긋해서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집착해요, 강시우 대표님.” 마지막 단어를 내뱉는 순간, 서진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아팠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폭우 소리마저 멎은 것처럼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억눌린 분노와 상처의 깊이는 고스란히 서진에게 전해져 와,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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