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예민함의 이유
2026. 7. 15. · 👁 3
대기실 문이 열리자마자 팽팽한 긴장감이 실내를 짓눌렀다. "옷." 강도윤의 짧고 신경질적인 한마디에 스타일리스트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화려한 무대 의상을 벗겨내고 편한 가운을 걸쳐주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손끝이 실수로 도윤의 목덜미를 스치자, 그가 날카롭게 고개를 돌렸다. "조심 좀 하지? 피부 다 일어난 거 안 보여?"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대기실 안의 모든 스태프가 숨을 죽였다. 평소에도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그였지만, 콘서트가 끝난 직후의 강도윤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그 자체였다. 메이크업 스태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클렌징 워터를 묻힌 솜을 들고 다가왔지만, 도윤은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됐어. 내가 해. 다 나가." "하지만 도윤아, 메이크업은 다 지우고 가야…." "나가라고 했잖아. 귀먹었어?" 도윤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차갑게 굳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스태프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리는 제가 할 테니 먼저들 퇴근하십시오." 조용한 대기실을 가르는 차분한 목소리. 한지우였다. 그는 구석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스태프들의 짐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어? 어어, 지우 씨. 그럼 부탁 좀 할게."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날 구실을 찾던 스태프들은 지우의 말에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무거운 철문이 닫히고, 넓은 VIP 대기실에는 오직 도윤과 지우, 단 둘만이 남았다. "하아…." 사람들이 사라지자마자 도윤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눈앞을 찌르는 듯한 화장대 조명의 쨍한 빛 때문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며칠째 제대로 자지 못한 수면 부채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제발 저 빌어먹을 조명 좀 꺼줬으면. 딸깍.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린 순간, 거짓말처럼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날카로운 백색 조명들이 일제히 꺼졌다. 대신 은은하고 따뜻한 색감의 간접 조명 하나만이 켜졌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뜬 도윤의 시선 끝에, 스위치에서 손을 내리는 지우가 서 있었다. "…누가 맘대로 조명 끄래?" 도윤이 여전히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지만, 지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탁자 위에 보온병 하나와 작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눈이 부셔 보이시길래 껐습니다. 다시 켤까요?" "……." 정곡을 찔린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지우의 말대로 찌를 듯한 빛이 사라지자 두통이 한결 가라앉고 있었다. 도윤이 대답 없이 미간만 찌푸리고 있자, 지우는 보온병을 열어 머그잔에 내용물을 따랐다. 은은하고 향긋한 캐모마일 향이 대기실 안에 번졌다. "드십시오." "나 남이 타주는 거 안 마셔. 온도 안 맞으면 바로 뱉는 거, 인수인계 안 받았어?" "받았습니다. 65도.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게." 지우가 잔을 도윤의 앞쪽으로 밀어주며 덤덤하게 덧붙였다. "제가 온도계를 들고 다니진 않아서 정확히 65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당장 마시기 가장 좋은 온도일 겁니다. 두통에 캐모마일이 좋으니까요." 도윤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보통 매니저들은 강도윤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굽실거리기 바빴다. 그런데 이 신입은 자신이 화를 내든 말든, 제 페이스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할 말은 다 하면서. 도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잔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천천히 손을 뻗어 한 모금 머금었다. '…완벽하네.' 혀끝을 데지 않을 만큼 따뜻하면서도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딱 그가 원하는 온도였다.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있던 목 근육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너, 이름이 뭐라고?" 잔을 내려놓은 도윤이 처음으로 지우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한지우입니다." "한지우." 도윤이 입안에서 그 이름을 천천히 굴려보았다. 건조하고 무심한 얼굴. 스태프들은 그저 강도윤이 성질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도망치기 바빴는데, 이 남자는 단번에 자신이 극심한 두통과 빛 피로도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눈치가 빠르네." "매니저니까요." 지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는 구급상자를 꺼내 다가왔다. "아까 넘어지실 뻔했을 때, 오른쪽 발목이 살짝 꺾이는 걸 봤습니다. 파스 스프레이 좀 뿌리겠습니다." "…너 진짜 뭐냐?" 도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짜증이 아닌 당혹감이 묻어났다. 자신조차 무대를 끝내고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던 미세한 통증이었다. 지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도윤의 바지 밑단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렸다. 차가운 스프레이가 발목에 닿으며 시원한 감각이 퍼졌다. 도윤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발목을 처치하는 지우의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남의 손길이 닿는 것을 그렇게나 혐오했는데, 묘하게도 지우의 손길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조용한 공간에서 들려오는 지우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단정한 움직임이, 지독한 불면증으로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도윤의 신경을 거짓말처럼 다독이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10분 뒤에 차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조금만 쉬고 계십시오." 처치가 끝나자마자 지우는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도윤이 쉴 수 있도록 대기실 밖으로 나가려 걸음을 돌렸다. "야." 문을 열려던 지우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도윤은 여전히 소파에 기대어 앉은 채, 조금은 풀어진 눈빛으로 지우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너 내일부터 운전도 네가 해." "그건 원래 제 업무입…." "다른 사람 말고, 너만 내 차에 타라고." 단호한 도윤의 말에 지우의 무심한 눈동자가 아주 잠시, 작게 흔들렸다. 그러나 지우는 이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다시 혼자가 된 대기실. 도윤은 빈 머그잔을 매만지며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여전히 피곤했지만, 요 며칠 사이 처음으로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한지우라….' 도윤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조명이 꺼진 무대 뒤, 처음으로 흥미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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