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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의 후예 · snow

1화. 잿더미 위에서

2026. 7. 15. ·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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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하늘을 삼켰다.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총단이 불타고 있었다. 천 년을 이어온 거대한 전각들이 붉은 혀에 휘감겨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비명과 쇳소리, 살점이 타는 냄새가 밤공기를 가득 메웠다. 불과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강호에서 가장 두려운 이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한 화장터에 지나지 않았다.

무너진 담장 아래로 낯익은 얼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침마다 무진에게 만두를 쥐여 주던 주방 아저씨도, 목검을 함께 휘두르던 사형들도, 이제는 이름을 부를 수조차 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열 살 무진(武進)은 무너진 기둥 뒤에 웅크린 채 숨을 죽였다.

"찾아라!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정파 무사들의 외침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들의 검은 이미 붉게 젖어 있었다. 무진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자신도 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다를 바 없어질 터였다.

무진은 알지 못했다. 어째서 오늘 밤, 정파의 무리가 총단 깊숙한 곳까지 아무 저항도 없이 밀고 들어왔는지. 결계도, 경비도, 함정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뚫려 있었다. 그저 어른들이 소리쳤을 뿐이다. "문이 열렸다!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그 어른들은 모두 죽었다.

바로 오늘 낮까지만 해도 세상은 평화로웠다. 사부는 마당에서 무진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며 껄껄 웃었다. "무진아, 검은 힘으로 휘두르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베는 것이지." 무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저 좋아서 따라 웃었다. 그게 불과 반나절 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눈앞에, 그 사부가 쓰러져 있었다.

천마(天魔). 강호를 벌벌 떨게 하던 그 이름. 무진에게는 세상 하나뿐인 스승이자,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수십 자루의 검에 꿰뚫린 채, 자신이 흘린 피 웅덩이 속에 누워 있었다.

"사…부님."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기어갔다. 참으려 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뜨거운 잔해가 손바닥을 지졌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의 손가락이 희미하게 떨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무진…이냐."

"사부님! 제가, 제가 의원을―"

"쉿."

천마의 눈이 무진을 붙들었다. 죽어가는 자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형형한 눈빛이었다.

"들어라. 시간이… 없다."

무진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소리만은 내지 않았다. 그것만은 사부가 가르친 그대로였다.

"오늘 밤… 교를 무너뜨린 건, 정파가 아니다."

"…예?"

"안에서… 문이 열렸어. 우리 중 누군가가… 교를 팔았다."

무진의 눈이 커졌다. 배신. 그 두 글자가 어린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천마의 손이 힘겹게 품속을 더듬었다. 반쯤 불에 그을린 낡은 책 한 권. 그는 그것을 무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천마심법(天魔心法)이다. 절반은… 타버렸지만. 그래도 이거라면, 너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게다."

"사부님, 같이 가요. 저 혼자는 싫어요. 제발―"

"무진."

천마의 목소리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복수를… 서두르지 마라. 강해지고, 살아남아라. 진짜 원흉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섣불리 달려들면… 너까지 삼켜질 것이야."

말을 마친 천마의 손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빛이 꺼졌다.

"…사부님?"

대답은 없었다.

"사부님!"

무진은 터지려는 비명을 삼켰다. 목구멍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울음을 눌러 삼켰다. 지금 소리를 내면 끝이었다. 사부의 마지막 부탁조차 지키지 못하는 놈이 될 터였다.

"이쪽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횃불의 붉은 빛이 무진이 숨은 기둥 바로 옆까지 넘실거렸다. 무진은 숨을 멈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한 무사가 검을 든 채 잔해를 헤집었다. 무진의 발끝에서 한 뼘. 반 뼘. 검끝이 어둠 속을 천천히 더듬었다.

바로 그때, 머리 위 대들보가 불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불티가 폭발하듯 튀었고, 무사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제기랄, 여긴 곧 무너진다. 나와!"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무진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했다.

그는 그을린 심법서를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무너진 벽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잔해가 살갗을 지졌다. 아팠다. 하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흐려지던 정신을 붙들어 주었다.

좁은 틈을 기고, 또 기어서. 무진은 마침내 불바다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평생을 살아온 집이. 함께 웃던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였던 곳이. 재가 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무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떨렸다. 무섭고, 슬프고, 아팠다. 열 살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밤이었다. 당장이라도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 붉은 불빛 속에서, 소년의 눈동자가 서서히 식어 갔다.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차올랐다. 차갑고, 단단하고, 결코 꺼지지 않을 무언가가.

"반드시…"

무진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강해져서. 한 놈도 빠짐없이, 갚아주마."

무진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상처투성이 몸으로, 품에 안은 반쪽짜리 심법서 하나만을 의지한 채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지옥에서 최대한 멀리, 더 멀리 걸어야 한다는 것만을 알았다. 소년은 붉게 물든 밤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작은 발자국이 십 년의 지독한 은둔으로, 그리고 훗날 강호를 통째로 뒤흔들 폭풍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그때의 무진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날 밤, 천마신교는 강호에서 자취를 감췄다. 세상은 그렇게 하나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잿더미 속에서, 단 하나의 불씨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십 년 뒤. 하얀 무면(無面)으로 얼굴을 가린 한 검객이 강호에 나타나, 그날 잿더미에 묻힌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내며― 그 작은 불씨가 세상을 어떻게 불태우는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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