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정찰
2026. 7. 18. · 👁 5
정찰선 '메리디언 7호'의 조종석은 언제나처럼 좁고 서늘했다. 카이 레번은 헬멧 바이저 안쪽에 맺힌 자신의 숨결을 느끼며 계기판 위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출항 전 점검은 이미 세 번이나 끝냈지만, 베살 항성계로 향하는 임무 앞에서는 언제나 손끝이 먼저 긴장했다. "또 손 떨어, 레번." 부조종사 자리에 앉은 로사 던컨이 헤드셋 너머로 웃음을 흘렸다. "이번이 몇 번째 정찰이더라. 열두 번째? 열세 번째?" "열네 번째." 카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매번 똑같이 긴장돼. 그게 이상한 거야, 아니면 정상인 거야?" "둘 다겠지." 던컨이 뒷좌석을 향해 소리쳤다. "브렌, 산소 순환기 수치 어때?" 뒷좌석의 정비병 브렌 하이드가 계기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정상. 근데 이 배는 진짜 산소를 아껴 먹네요. 항성계 안쪽으로 들어갈 때마다 순환기가 미친 듯이 돌아가는 게, 꼭 뭔가한테 빨아먹히는 느낌이라니까요." "미신 같은 소리 하지 마." 던컨이 핀잔을 줬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도 옅은 불안이 묻어 있었다. 베살 항성계 근처에서 근무하는 정화 함대 병사들 사이에서는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균사 포자에 스치면 살이 녹는다는 소문, 행성 표면의 빛무리를 오래 쳐다보면 꿈에 나온다는 소문, 심지어 베살이 밤마다 함대의 통신 주파수를 엿듣는다는 농담 같은 괴담까지. 카이는 그런 이야기들을 웃어넘기려 애썼지만, 열네 번의 정찰을 거치며 그 웃음은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메리디언 7호는 헬릭스 협정 정화 함대 소속의 소형 정찰선으로, 베살 항성계 외곽 궤도를 도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임무의 명목은 '경계 감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베살이 인류의 거주 구역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조짐이 있는지 감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카심 라이너트 제독이 지휘하는 정화 함대는 베살을 명백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베살은 이미 '적'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진입 30초 전." 던컨이 계기판을 확인하며 말했다. "경계선까지 3천 킬로미터 남았어. 표준 절차대로 감속하고 스캔 개시." 카이는 조종간을 가볍게 당기며 속도를 줄였다. 창밖으로 베살의 항성계가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도는 항성 아래, 세 개의 행성이 궤도를 그리고 있었고, 그중 두 번째 행성 — 베살 — 은 다른 두 행성과는 확연히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표면 전체를 뒤덮은 옅은 녹회색과 은은한 청록빛 발광 무늬가 마치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의 피부처럼 일렁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카이는 그 광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름다움 속에 도사린 무언가를 자꾸만 의식하게 됐다. "스캔 개시." 던컨이 명령했다. 계기판 위로 데이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대기 조성, 표면 온도, 자기장 변화, 그리고 정화 함대가 특히 예민하게 감시하는 항목 — 균사 밀도 지수. "밀도 지수 안정권." 브렌이 보고했다. "지난주 정찰 때랑 큰 차이 없어요." "좋아, 예정대로 외곽 궤도 한 바퀴만 돌고 복귀하자." 던컨이 말했다. "괜히 안쪽으로 더 들어갈 필요 없어."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찰선의 진로를 조정했다. 익숙한 절차였다. 외곽 궤도를 따라 크게 원을 그리며 스캔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상 징후가 없으면 그대로 복귀한다. 지난 열세 번의 정찰이 모두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열네 번째는 달랐다. 정찰선이 궤도의 절반쯤을 돌았을 때, 계기판이 갑자기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카이는 반사적으로 속도를 줄이며 계기를 확인했다. "뭐야, 이거." 던컨이 인상을 찌푸렸다. "포자 밀도가 갑자기 치솟는데?" 브렌이 뒷좌석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상해요. 이런 밀도 상승은 처음 봐요. 마치 뭔가가 방출된 것처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찰선 앞쪽 시야가 순식간에 뿌옇게 흐려졌다. 항성계 외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밀도의 포자 구름이 마치 파도처럼 정찰선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회피 기동!" 던컨이 소리쳤다. 카이는 즉각 조종간을 꺾었지만, 포자 구름의 확산 속도는 정찰선의 회피 기동보다 빨랐다. 순식간에 메리디언 7호는 옅은 녹회색 안개 속에 완전히 휩싸였다. "장비 이상 없어?" 던컨이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브렌이 대답하려던 순간, 조종석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계기판의 불빛이 깜빡이고, 통신 채널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잡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카이는 그것을 느꼈다. 처음엔 그저 이명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소리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마치 누군가—혹은 무언가—가 카이의 의식 한 귀퉁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듯한 느낌. 눈앞의 계기판이 흐릿해지고, 대신 낯선 이미지들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거대한 뿌리. 땅속 깊이 뻗어 있는, 수백만 갈래로 갈라진 균사의 그물. 그 그물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 — 감정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파동. 슬픔에 가까운, 그러나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오래되고 거대한 상실감. 그리고 그 상실감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카이를 향한 질문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너는 왜 왔는가. "레번! 카이!" 던컨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정신 차려, 조종간 놓지 마!" 카이는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다시 선명해졌다. 계기판, 창밖의 별들, 옅어지고 있는 포자 구름. 몇 초 사이의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길었을까. 손끝이 저릿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나… 괜찮아." 카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잠깐 시야가 흐려졌을 뿐이야." "포자 구름이 조종석 밀폐 계통에 영향을 준 것 같아." 브렌이 계기를 확인하며 말했다. "산소 농도가 잠깐 떨어졌었어요. 그것 때문에 어지러웠을 수도 있어요." 던컨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이를 살폈다. "괜찮은 거 확실해? 눈동자가 좀 이상했어." "괜찮아." 카이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방금 겪은 것이 단순한 산소 부족으로 인한 어지럼증이 아니라는 걸, 카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선명했다.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한 조각이 통째로 카이의 머릿속에 옮겨 심긴 것 같았다. "포자 밀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브렌이 보고했다. "이상 현상은 종료된 것 같습니다." "좋아, 더 이상 위험 부담 지지 말고 복귀하자." 던컨이 결정을 내렸다. "베이스캠프에 상황 보고하고, 정찰선 전체 계통 점검 받아야겠어." 정찰선이 방향을 돌려 베살 항성계를 벗어나는 동안, 카이는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지는 베살의 표면에서 청록빛 발광 무늬가 마치 무언가에 반응하듯 옅게 일렁이고 있었다. 착각일까. 카이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지만, 자꾸만 그 빛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베이스캠프로 귀환한 후, 카이는 곧바로 의무실로 보내졌다. 표준 절차였다 — 포자 구름에 노출된 승무원은 반드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의무관은 카이의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혈액 샘플을 채취하고, 신경 반응 검사를 진행했다. "특이 사항 없습니다." 의무관이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했다. "산소 농도 저하로 인한 일시적 어지럼증으로 기록하겠습니다. 혹시 이상 증세 느껴지면 바로 재검사받으세요."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사대에서 내려오려다가, 문득 자신의 왼손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손끝 피부 아래, 아주 미세하게, 실핏줄과는 다른 패턴의 옅은 자국이 비치고 있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모양으로 갈라진, 균사와 닮은 흔적. "저기." 카이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뭔지 아세요?" 의무관이 카이의 손을 살펴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잠깐만요, 스캐너 다시 가져올게요." 의무관이 정밀 스캐너로 카이의 손끝을 다시 확인했지만, 스캐너는 아무런 이상도 감지하지 못했다. "장비상으로는 정상입니다. 조명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어요. 일단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세요." 카이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의무실을 나서면서도 자꾸만 손끝을 들여다보았다. 분명히 봤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방금 전 포자 구름 속에서 느꼈던 그 거대한 뿌리의 이미지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같은 시각, 헬릭스 협정 의회의 한 비공개 회의실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베살 항성계의 자원 가치는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습니다." 노바코프의 로비스트 바르크 하솔이 홀로그램 자료를 띄우며 말했다. 화면에는 베살 표면의 생체 에너지 밀집 구역이 붉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저 행성의 균사 네트워크에서 채취 가능한 신경물질은 현재 알려진 그 어떤 자원보다도 효율적인 에너지원이 될 수 있습니다. 협정 소속 300여 개 행성계의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회의 탁자에 둘러앉은 의원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하지만 그 행성은 현재 정화 함대에 의해 위협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 온건파 의원이 지적했다. "채굴 시범 사업을 승인하기 전에, 먼저 그 위협의 실체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바르크 하솔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희 노바코프가 제안드리는 겁니다. 정화 함대의 임무는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고, 저희의 임무는 그 이후의 자원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두 임무는 상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죠. 섬멸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는 즉시, 저희는 즉각 채굴 인프라를 투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의장석에 앉은 원로 의원이 손을 들어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이 안건은 다음 정기 회기에 정식으로 상정하겠습니다. 다만—" 그는 하솔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노바코프 측이 이 안건을 조기에 통과시키기 위해 정화 함대의 작전 판단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하솔이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회의실을 나서며 그가 보좌관에게 낮게 속삭인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라이너트 제독 쪽 채널 다시 확인해봐. 이번 분기 안에 작전이 진척되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 직접 손을 써야 할 수도 있어." 그날 밤, 카이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막사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낮에 겪었던 그 이상한 감각을 곱씹었다. 너는 왜 왔는가. 그 질문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단순한 환각이라기엔 너무나 또렷했고, 산소 부족으로 인한 어지럼증이라기엔 너무나 구체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카이는 손을 들어 손끝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막사 안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 나뭇가지 모양의 흔적이 옅은 빛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일까. 카이는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했지만,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사관학교 시절 함께 야간 훈련을 받던 동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연락위원회에서 생태학자로 일하고 있다는 이엔 라이너트. 헤어진 지 오래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녀라면, 어쩌면, 지금 카이가 겪고 있는 이 일을 이해해 줄지도 몰랐다. 카이는 결국 몸을 일으켜 개인 단말기를 켰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연락처 목록을 스크롤하다가, '이엔 라이너트'라는 이름 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메시지를 보낼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던 카이는, 결국 단말기를 다시 내려놓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은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손끝의 옅은 빛은, 그날 밤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 댓글 0
로그인하고 감상을 남겨보세요.